점심 준비

우리 총무님이랑 오늘 점심 준비를 같이 했다.

등대 생협 제철꾸러미에 온 청국장 두 덩이로 청국장 끓어야지, 마음먹고
가스레인지에 육수 낼 물 올리고, 사무실에 있던 감자, 양파, 대파를 송송 썰어 놓는다.
내가 손질할 동안 총무님 밖에 나가 할머니가 직접 농사지어 파는
오늘 아침 갓 따온 동그랗고 예쁜 애호박 하나와 무, 싱싱한 쪽파를 사오신다.
새 재료들도 숭숭 썰어 재료들을 육수에 넣고 팔팔 끓이니
달큰한 냄새가 진동한다. 한 입 맛보니
"아! 간도 안하고 야채만 넣었는데 맛있어요!"
"아침에 갓 따온 야채들을 넣었잖아. 생명의 기운이 아직 남아있는 거지.
이 육수가 맛있어야 완성된 요리가 맛있는 거야."

보글보글 끓어가는 청국장과 타닥타닥 칼질 속에서 재잘재잘 수다도 계속된다.
그러다 총무님,
"그래도 염현주 이제 좀 살아났네?"
"네?"
"왜 9월 부터 10월 초까지 그랬나? 다운되어 있었잖아."
"에? 아닌데..."
"뭐 아니야. 그래서 윤옥자 선생님이랑 걱정했었는데."
"아하하하하. 제가 다운되어 있는 상태인지도 몰랐네요.;;;"


사실 진짜 모르겠다. 별로 우울하거나, 힘들다거나 그러진 않았는데.
하지만 그렇게 계속 시선 주시며 걱정하고 계셨구나,
그 포근한 마음에 마음이 발그레해졌다.



완성된 점심.
야채 가득한 청국장에 갓 뜯은 야들야들한 상추 한 소쿠리.
실습 오신 선생님이 해주신 양념 불고기에 풀씨학교에서 남은 도시락 반찬들.
상이 푸짐하다.

오늘의 청국장은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청국장 중 최고의 맛이었다.

지음

홀로 앉아 금을 타고.-옛 글 속의 우리 음악 이야기. 이지양. 샘터.  p.36~38

내 마음을 똑같이 일아주는 사람, 내 소리를 듣고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이라고 한다.
이에 얽힌 종자기와 백아의 이야기.

이를 바탕으로 연암 박지원이 쓴 글이 있다.
친구 이덕무가 죽고, 백아처럼 홀로 남은 박제가의 안부를 염려하며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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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타던 백아가 그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는 친구 종자기가 죽고 나자, 세상이 텅 빈 듯하여, 이제 다 끝장났다 싶어서, 허리춤의 단도를 꺼내 거문고 다섯 줄을 북북 끊어 버리고, 거문고 판은 팍팍 뽀개 아궁이의 활활 타는 불길 속에 처넣어 버리고 스스로 이렇게 물었겠지.
"네 속이 시원하냐."
"시원하고말고-" 
"울고 싶으냐?"
"울고 싶고 말고."
그러자 북받쳐 나오는 자기 울음소리가 천지에 가득하여 종이 울리듯, 눈물이 솟아나 구슬처럼 방울방울 옷깃에 떨어졌을 것이네. 눈물을 드리운 채 눈을 들어 바라보노라면, 빈산에는 사람 하나 없는데, 물은 절로 흐르고, 꽃은 절로 피어 있네.
<연암집>. 신호열, 김명호 역주


이 글 끝에 한 마디가 첨가되어 있다. "네가 백아를 보았느냐고 물을 테지. 암, 보았고 말고!" 라는 한 마디. 직접 눈으로 본 것보다 더 생생하게 그 심정을 확신한다는 연암의 그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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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무슨 생각을 하다가 그랬나? 오빠가 연락이 안 되어 혹시 사고라도? 하고 걱정할 때 했던 생각이었나?
'오빠가 죽으면 나는 그 때도 악기를 연주할 수 있을까? '
라는 생각을 했었더란다.

아마도, 오카리나를 불면 둘이 같이 퉁소와 오카리나를 불며 즐거워하던 추석날이 떠오를 것이고,
우쿨렐레를 보면 같이 낙원상가에 가서 악기를 사고, 기타와 합주하며 더 어울리는 연주법을 찾던 날이 떠오를 것이며
기타와 퉁소를 보면 이창익이 떠올라 눈물이 시큰해지겠지.

오빠가 없는 세상에서 악기들은 나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며, 내가 과연 연주할 수 있을까?
오빠를 기억하며 좋은 추억들을 안고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절로 떠오른 구절.
하지만... 참 좋던 구절.


그리고 오빠한테 문자를 보냈다.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 하고.




덧.
그 다음 날, 이부분을 읽어줬는데 쳇. 별 반응이 없다.-_-


2010. 1. 세번째 에니어그램 수련. 생각과 고민

 

엄마에게 부정적인 느낌을 받아 난 7번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에니어그램 수련을 올 때마다 그 부정적 느낌이 도대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릴 적 기억이 거의 없고, 첫 상처조차 제대로 떠오르는 것 같지 않아서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참 답답하다. 두 번째 프로필에서 나는 나를 엄마 당신의 한을 풀 대리물로 여겼다는 사실, 그런 나는 엄마의 기대가 부담스러웠다 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정말 그걸까? 그건 어릴 때, 만 6세 이전보다는 그 이후의 일이 아니었나, 라는 의심이 한 켠에 있었다. 솔직히 잘 와닿지 않는 느낌이기도 하고.

그런데... 얼마 전 꿈을 꿨는데 엄마가 나왔다. 내가 꾸는 꿈은 사실 굉장히 리얼하기도 하고 내 불안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곤 한다. 자주 꾸기도 하고. 이번 엄마 꿈을 꾸고나서 출근길, 버스에서 무심코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 엄마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방랑벽과 유흥을 즐기는 내 성향 탓에 집에 잘 붙어있었던 편도 아니었고, 첫 독립-자취생활 1년 6개월만의 일이었다. 이 사실을 지금, 다시 떠올리니 아, 나는 그동안 엄마가 정말 별로 좋지 않았었구나. 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마음이 많이 아파졌다. 꿈을 꾸고나서 정말로 용건 없이 처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언제 오냐는 엄마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이 감정을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먼저 떨어진다. 도대체 나는 엄마에게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박탈감을 느꼈던 걸까. 내 밑빠진 독의 이유와 근원을 알아야 내 헛헛함과 애정갈구도 채워질 것인데.

그래도 처음 에니어그램을 시작했던, 아무것도 떠오르던 그 때와 달리 아주 조금, 조금씩 엄마에 대한 내 감정과 기억들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지금 무심코 드는 생각으로는 나와 5살 차이가 나는 우리 막내 동생. 남자라는 이유로, 막내-셋째 라는 이유로 이쁨을 한 번에 받았던 막내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지금도 막내 동생을 싫어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받았던 귀여움, 이쁨, 사랑을 막내에게 전부 빼앗겨버린 기분이었을까.(둘째도 있었지만 나에게 더 많이 줬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내게 관심을 다시 돌리고자 열심히 모든 걸 잘하는, 팔방미인이 되고자 했을까? 끝없이 즐거운 것을 찾고 물건으로, 재미로 부족한 내 만족을 채우려했던 걸까. 어제 저녁, 무심코 떠올랐던 내가 밥을 빨리 먹는, 아빠에 대한 기억처럼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더 떠올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번 수련의 가장 큰 수확은 격정과 함정에 대해 탐닉과 이상주의에 대해 훨씬 깊이있게 느꼈다는 것. 고백하건데 그동안 탐닉에 대해 단순히 중독에 이를 수 있는 욕심 정도라고 생각해왔다.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만이었다. 탐닉이라는 내 격정이 단순히 뭔가에 푹 빠진다 정도로만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사실 그렇다면 격정이라는 말이 붙지도 않았겠지.) 특히 어제 조순애 선생님이 지적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쿠쿵하고 마음이 내려앉을 정도였다. 필사적으로 감정을 참았지만 순간에는 내 속의 흥과, 내 속의 즐거움 모두를 부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일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끔 하기도 하고. 나보고 이 모든 즐거움과 쾌락을 버리고 청교도 같은 삶을 살라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이 모든 건 순간 이루어진 생각들이고 지금도 이렇다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분명히 깨달은 사실이 외부적인 일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던 것을 포기한다는 것. 그리고 그와 더불어 내 중심을 찾아 평온해질 때 가장 행복해진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지금까지는 전혀 다가오지도 않고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항목들을 보다 더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피상적으로만 들었던 “이상주의”의 함정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난 재미있고, 될 거 같고, 되면 굉장히 멋있을 것 같은 그림들을 정말 많이 그린다. 이런 내 그림들, 상들 자체가 이 상향이고 그에 무턱대고 달려가는 것이 7번이 빠지는 이상주의라는 함정이다. 라는 사실을 이제야 제대로 잉해한 듯 싶다.

이상향, 내가 그린 그림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를 실행하기 위해 내가 보이는 행동들, 중심을 더 둬야할 것들에 관심을 놓고 다른 새로운 것들에 계획도 구체적 실천도 없이 무조건 ‘탐닉’하며 다가가는 나. 이것이 결국 아까 이야기했던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고 행복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내가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고, 내 중심을 찾아 평온해질 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시작을 해야겠다.

걷기 명상을 통한 꾸준한 자기 관찰과 기억.

내 중심을 찾고 욕심과 탐닉을 가려내기 위한 육하원칙 정리법.

내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큰숨의 생활화.

스토리 텔링을 통한 내 밑빠진 독 원인 찾기.

이상향에 대한 장, 단기 계획.

이를 통해 내가 맑은 정신을 갖고 침착해지고, 깊이 있어지는 5번의- 통합의 방향을 향해 가리라. 와우. 생각만 해도 벌써 건강해진 기분이다.


NEX-3 하루살이

NEX-3D를 구입했다.
보너스를 몽땅 털어 넣었다. 이제부터 난 거지ㅠㅠㅠ
그래도 확실히 좋다 /////
물론 사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험난하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나가서 사진을 찍을 일이 없었지만
기대된다!

실내에서도 너무 잘 나오고, 화각도 넓고 화면도 쨍해!!!

에니어그램 프로필 생각과 고민

광명 ymca에서는 에니어그램 영성수련을 매년 1~2번 하곤 한다.
볍씨 학교 청소년 과정 친구들도 매년 가서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자아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람을 유형으로 나눈다는 것이 참 싫어서 Y에 들어오기 전에는 에니어그램이라는 것 자체에 질색을 했었다. 
그리고 작년 8월, 첫 번째 에니어그램 수련을 다녀왔다.
보통 에니어그램 프로그램이랑은 좀 달랐다.
단순히 사람을 유형으로 나누면서 당신은 이 유형이니까 이런 사람, 저 유형은 저런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을 같이 먹고 자고, 이야기하면서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들.
유형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
에니어그램 수련을 다녀오면서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내 행동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다음은 두번째 에니어그램 수련을 가서 마지막 날 썼던 에니어그램 프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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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9.화. 두 번째 에니어그램 프로필

아빠가 미웠다. 밉고 또 미워서 너무 힘들었다. 아빠에 대한 미움은 남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고 한동안 그 때문에 무척 힘들었더란다. 엄마는 내가 지켜야 하는 존재였고, 난 엄마와 친구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엄마인데... 엄마를 생각하면 왠지 모를 먹먹함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정리되지 않는 부분들이 잔뜩 떠오르곤 했다.
작년, 어릴적 엄마와 아빠에 대한 감정을 다시 떠올렸다. 아빠에 대한 마음은 내가 커서 덧입혀진 것이란 사실은 분명했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는 뭐였을까. 어릴적 나에게 엄마는... 지금은 친구같은, 좋은 엄마인데 그런데 이 먹먹함과 답답함은 도대체 뭘까.
엄마는 나를 당신을 대신할 존재로 생각하셨다.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도 못 나온 우리 엄마.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서 전액을 항상 집에 부쳤던 엄마. 하지만 일을 하면 손 끝이 야무지고 일처리가 명확한 엄마. 엄마는 엄마와 비슷한 나에게 기대가 컸고 엄마의 못다한 한을 나를 통해 풀길 원했다.
“엄마는 못배웠어. 너는 엄마 대신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시집 잘 가고, 좋은 직장 잡아. 너는 엄마 대신... 엄마는 그게 한이야. 넌 날 너무 닮았어.”
엄마는 그래서 나에게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줬다. 서예, 피아노, 글짓기, 주산, 미술 등등 온갖 종류의 학원에 다 다녔다. 하지만 엄마는 따뜻하지는 않았다. 칭찬도, 스킨쉽도 없었다. 그런 엄마가 난 부담스러웠다.
아빠는 기억조차 희미할 정도로 좋은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날 봐주지 않는, 관심 없는 아빠.
엄마, 아빠와의 이런 관계로 난 7번에 8번 날개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이 좋다. “재미있겠다!” 싶은 것이 발견되면 당장 그걸 해봐야한다. 지금도 새로 시도하려는 게 있다. 내가 시도해봤고, 경험해 봤던 것들이 많다. 단순 특기류도 있지만 각종 교육, 모임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많이. 무엇보다 난 그렇게 할 수 있다. 다 해낼 수 있어, 라는 대책없는 무모함과 자신감이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뭔가 새로 습득하는 감과 속도가 빠르고 사람들과 모임자리에 쉽게 어울린다. 그러니 계속 한다. 그런 게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재다능, 모든 것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난 대부분의 것들을 다 잘해. 못 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라는 생각이 있었고 고등학생 시절 썼던 일기에는 팔방미인, 다재다능함에 대한 욕구, 욕심이 적혀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렇게 여러 가지 재주가 많은 내가 참 좋다.
하지만 반면에, 그런 와중에서도 마음 속 깊은 곳의 헛헛함을 느끼고 있었다. 시작하면 친구들보다 빠르게 익숙해지지만 기본적으로 정말 타고난 결정적 센스는 없구나. 난 항상 흉내만 내는, 누군가의 짝퉁이 될 수 밖에 없구나. 내 속에 진짜는 없구나. 그러니까... 깊이가 없구나.
흥미가 꾸준히 길게 이어지지 않는 탓에, 혹은 그런 벽-무언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고비에 부딪치면 바로 포기해버리는 탓이다. 무언가 하나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르는 법. 하지만 그런 고통을 회피해버린다. 피해버린다. 그래서 내 속에는 난 많은 걸 잘해!라는 오만함과 함께 나는 가볍고, 깊이가 없고,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헛헛함이 뿌리깊게 존재한다.
다이어리. 친구들과의 약속, 일정으로 가득찬 달력을 보면 뿌듯해진다. 가끔은 다시 한 번 지난 년도, 달의 다이어리 달력을 보면서 흐뭇해한다.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았지 하고.(하지만 일로 가득찬 달력은 싫다.)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하다. 재미있는 것을 찾는다. TV, 인터넷, 만화, 수다, 악기, 글쓰기, 만들기, 청소... 다 하기 싫고 귀찮으면? 잔다. 잠이라도 자야한다. 일하러 갔는데 할 일 없이 서성이고 있는 것은 힘들다. 재미없고 지루해도 힘들다. 그러면 꾸벅꾸벅 존다. 재미가 있어야 하고 계속 뭔가를 해야하니까 잘 빠져들고 탐닉한다. 마냥 프리셀을 계속하기, 인터넷 웹툰 독파하기, 만화책 쭉 이어보기, 청소를 해도 끝장을 보고, 잠을 자도 늘어지게 잔다. 12시간, 20시간도 잘 잔다. TV 드라마, 어떤 작가에게 꽂히면 그 사람 작품을 모두 찾아보고 관련 정보를 모두 찾아본다. 누구보다 중독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란 것을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식탐이 없다고 생각했다. 먹을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먹을 걸 밝히는 사람은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먹는 걸 줄이고 친구들과 음식을 먹을 때 끝까지 먹고 싶어도 참았다. 걸신들린 것처럼 보일까 봐. 그래도 미각에 대한 자신은 있었다. 맛있다, 맛없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누구보다 까다롭다고 생각해왔다. 이제는 안다. 난 맛있는 음식이 좋고,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이 기분을 부정하고 모르는 척 하지 않는다. 대식과 집착, 그러니까 탐닉은 조심해야겠지만.
물욕도 마찬가지다. 난 물욕이 없는데요. 하고 단호하게 지난 에니어그램 수련 그룹 토론에서 이야기했다. 물건을 마음껏 가져본 적이 없었다. 수련이 끝나고 깨달았다. 지하상가를 지날 때 왔다갔다 굴러가는 내 눈동자와 마음. 치솟는 욕심. 가져본 경험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욕심이 난다. 옷, 악세사리, 악기, 온갖 재료와 공구들, 책 등등... 옷이나 악세사리는 스스로 제동을 거나 책, 공구와 재료들은 마구 충동구매를 잘한다.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사야한다. 나를 키우고 성장시킨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 나를 더 세울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내가 지향하는 가치에 적합하다면 아끼지 않는다.

내 상태가 좋을 때 나는,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행복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 행복하고, 술 한 잔, 맥주 한 캔에 행복하고, 저기 지나가는 다람쥐 한 마리에 행복하고, 따뜻한 방바닥에 행복하다. 사실, 내가 이런 하나하나에 행복함을 스스로 절실히 느끼고 표현하게 된 것도 작년 에니어그램을 접하게 되면서 그리 되었다. 아, 나도 이렇게 작은 거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었구나.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지만 나도 이런 감정을 갖고 있었구나.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뼛속 깊이 외로움과 상실감, 박탈감을 느낀다. 치를 떨 정도로 힘들고 우울하고, 지치고, 울고 또 운다. 이런 감정이 느껴질 때는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못한다. 외롭고 또 외롭다. 아프다.
나의 이 불안, 욕구, 해소되지 않는 뿌리 깊은 외로움과 박탈감을 없애기 위해 나는 공격한다. 나보다 약한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이해되지 않는 사람. 저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하면 가장 아프고 힘들지 안다. 그 곳을 철저히 공격한다. 그러니까 나 공격하지 마. 나 건드리지 마. 그리고 그런 자신을 다시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나는 언제 인간이 될까.
하지만 나는 이제 내 욕구, 불안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모욕하는 것을 포기한다. 점점 나는 좋아지고 있다. 기복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 내가 내 불안, 욕구, 아픔 때문에 남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나는 그를 포기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장애물에 부딪친다고 해도 곧 원상회복될 수 있다. 나는 그런 힘과 에너지를 충분히 갖고 있고 그를 행동으로 옮기고 마음 깊이 담을 수 있다.
나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맑은 정신으로 지낼 수 있다.



두 번째 에니어그램 수련.
첫번째와 같은 내용, 같은 이야기지만 또 다른 이야기들이 들리고 마음 속에 와닿는다. 이번 에니어그램에서 가장 크게 놀라고 깨달은 사실은
내 보복성. 내 화.
자존심이 상하면 무섭게 보복한다. 무섭게 화를 낸다는 사실.
말도 안돼, 하고 생각했지만 소나무가 떠올랐다.
맞다. 나 소나무에게 무섭게 보복했지.

정신없이 프로필을 써내렸다. 더 쓰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역시 용두사미. 후반부에 가니까 지쳐버렸다. 끝 마무리가 미약하다. 첫번째 프로필을 쓸 때는 쓰면서도 엉엉 울면서 썼는데 두번째는 너무 편하게 썼다. 쭉쭉. 그리고 편하게 발표할 수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발표하면서 생각과 달리 격하게 울음이 터졌다. 다 발표를 하고 나니 온화한 미소로 선생님이 끄덕이며 미소짓고 계셨다.  

자연과 교육, 그리고 아이들 광명 YMCA 볍씨학교

보금자리 사태로 인해 볍씨 대표교사 조순애 선생님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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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음악 소리 듣고 왔어요.”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준우가 말했다. 아이는 조금 들떠 있다. 바깥에는 모처럼 비다운 비가 내리고 있다. 후두둑. 둑둑. 아이가 들은 음악 소리가 무엇이겠구나 가늠이 되었다.

“음~ 그랬구나.”
자세히 물으려다 뜸을 들이고 가만히 있었다. 아이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들어온 녀석은 이번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도 같이 음악 소리 들으러 나가요.”
내 얼굴을 보던 아이는 말을 조금 더 덧붙인다.
“빗방울이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또……”

몸을 일으켜 아이와 같이 나갔다. 몇몇 아이는 이미 준우와 밖에 있었고, 방 안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움직였다. 우산을 안 가지고 온 아이들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우리는 잠시 방 앞 마당 우산 아래에 머물렀다. 티팃. 트드듯. 두둣두. 두두투투.

대문 앞으로 옮겨 간 아이들은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손을 씻는다. 수민이가 말했다.
“여기는 비 오는 날만 씻을 수 있는 곳이에요~”

야트막한 구릉에 올랐다.
“선생님, 여기에요.”
쉬쉬. 샬샤르샤르. 춸춸차르. 학교 옆 밭에서 농사짓는 어르신이 땅에 덮어 놓은 비닐 위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 생전 처음 그런 소리를 들었다. 하늘이 우리들한테 준 선물.

아이들은 밭이 어떤지 궁금하다며 제 손으로 일군 밭이랑으로 간다. 난 조금 뒤쳐져서 아이들을 따랐다.

비.
흙.
노리하고 푸른 빛깔의 쬐꼬만 상추싹.
땅을 유심히 바라보는 눈.
날 발견하고 부르는 손.
참 좋다.


날이 따뜻해진 뒤로, 우리들은 아침에 학교 버스에서 내리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뒷동산이나 밭으로 곧장 간다.
산. 아이들보다 몇 배는 더 큰 아까시나무들이 감싸고 있는. 우리는 그 새로 스며드는 햇살을 누리며 체조도 하고 놀기도 하고 나무에 기대어 쉬기도 한다.
밭에선 지난 번보다 싹이 몇 개나 더 나왔나 얼마나 더 컸나 보고 또 보고, 밤 사이 묵은 기운을 털어내고, 해를 바라고 서서 해바라기가 되곤 한다. 따뜻한 해님의 기운이 가득 차오르도록. 바람이 좋은 날이면 팔을 벌리고 손가락 끝까지 쫙 펴서 바람결을 느낀다.
우리는 그렇게 해와 구름과 바람과 땅이 주는 힘으로 하루를 연다.

우리는 늘 꽃다지, 냉이, 토끼풀, 달맞이, 민들레, 제비꽃, 질경이, 꽃마리를 본다.
이른 봄엔 냉이를 캐서 된장국을 끓여 먹었는데……. 음~ 엄마 손맛 다음으로 맛나다.
얼마 전엔 제비꽃이랑 질경이를 가지고 풀씨름을 했다. 어쩌다 보니 제비꽃 풀씨름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수현이가 질경이 풀씨름에서도 마지막까지 버텼다. 며칠이 지나고 아이가 쓴 시에는 자연스레 풀씨름 얘기가 담겼다.
하루는 고운 흙을 골라내고 풀을 빻아서 거기에서 나온 빛깔로 그림을 그렸다. 화학 재료로 만든 뚜렷하고 진한 색 대신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 아이들이 팔랑거리며 여기 저기 다닐 만한 공간이 없다면, 흙과 나무와 꽃이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우리는 과연 무얼 배우고 무얼 느낄 수 있을까.
사람만으로는, 사람이 만든 것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도 전할 수도 없는 것들이 있다.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세상이 이루어지는 이치들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온 몸으로 깨우치곤 한다.
또 선함이나 협동, 평화와 같은 가치의 씨앗들을 스스로 키운다.
사람이 흙이고 해고 바람이고 불이고 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머리는 이걸 자주 까먹고 말지만, 몸과 마음은 무엇이 참인지 또렷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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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남지 않은 흙과 풀과 나무와 산.
지켜주세요.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볍씨학교 아이들 호소문 광명 YMCA 볍씨학교

볍씨학교가 보금자리 주택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아이들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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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광명의 70%가
풀과 산, 나무, 자연들 인 것을 아십니까?

안녕하세요.
저희는 볍씨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볍씨학교는 경기도 광명시 옥길동 차량기지 옆에 있는 대안학교입니다.
광명YMCA에 속해 있고 현재 초등학교 1학년부터 9학년까지 다니고 있습니다.
'생명이 자유로운 세상, 생명이 소중한 세상'이라는 철학을 가진 학교입니다.

저희 학교 옆에는 바로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풀이 있고, 흙이 있고, 돌이 있습니다.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교육을 실천하는 학교가 광명에 많이 위치하고 있는 이유도
광명의 70%이상이 풀과 산, 나무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많고, 풀도 많아 아이들이 자연을 접하기 쉬운 도시입니다.
곳곳에 산이고, 들이고, 둘러만 봐도 자연인 곳, 그래서 공기가 맑은 도시지요.
우리는 이 곳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금자리 주택 정책에 관해서 앍고 계신가요?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공약으로 내놓았던 정책입니다.
아파트를 대량으로 지어 사람들이 싸게 집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 정책을 실행시키려면,
광명의 70%인 나무, 풀, 꽃, 산, 맑은 자연들을 밀고
그 자리에 흙먼지를 날리며 아파트를 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연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볍씨학교도 사라지려 합니다.
자연들이 있던 자리에 아파트가
학교가 있던 자리에 건물들이 들어선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바람은
앞으로도 광명이 자연이 있는 도시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가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지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자연속에서 저희가 계속 배우고 자랄 수 있게 함께 관심 갖고 힘을 보태주세요.

감사합니다.

2010년 광명YMCA 볍씨학교 청소년과정 www.byeopssi.org 02)2616-8002

후두둑네 흙피리 아이들이랑

흙피리를 만들러 양평 후두둑 선생님네 다녀왔다.
아이들이랑 스타렉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고 달려서... 도착!
아, 역시 좁은 곳에서 복닥복닥 하는 건 참 힘들다.
아이들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도착하니 볕은 따사롭고, 2004년도에 만났었던 후두둑 선생님은 여전히 도사님의 포스를 내뿜고 있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후두둑 선생님을 좋아하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까르르! 까르르!

우릴 반겨주는 강아지 꼬맹이랑, 후두둑선생님이랑 같이 열심히 놀고
말하고 흙을 두들기고 흙피리를 문지르고.

밥을 서로 맛있게 나눠먹고는 뒷산 아래 가서 잔가지들을 주워온다.
피리를 굽기 위해서는 나무가 필요하니까!
나랑 예전부터 자주 불을 피웠던 정현이, 상훈이는 신이 나서 내가 잘하는 거라며 앞장선다.
그러다 웅덩이에서 개구리를 발견하고 와아아아아! 다들 환호한다.

잘 구워진 흙피리를 식히기 위해 입에 물을 머금고 와서 이리저리 뿌리는 연습을 한다.
진지하게, 그리고 신나게 달려와서 돌면서도 뿌리고, 자기 머리 위로도 뿌리고, 후두둑 엉덩이에도 뿌리고 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터진다.
그렇게 더 즐기다 오고 싶지만 어느새 돌아가야 할 시간.
양평까지의 먼 거리가 원망스럽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 제법이다.
상훈이는 금방 학교종과 비행기를 불고 수민이도 새를 부르는 꾸륵이로 곰 세마리를 연주한다.



따뜻한 햇볕과 좋은 사람, 즐거운 아이들이랑 행복한 시간.



후두둑네 홈페이지. http://www.hrgpiri.co.kr/

나의 음악사 띵까띵까

어릴 적 나는 노래와 춤을 즐기는 아이였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어른들의 이쁨을 한 몸에 받곤 했다. 특히 담다디 노래에 맞춰 추던 디스코는 내 주특기였다. 어느 정도 내가 자란 뒤에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나에게 "담다디 한 번 보여줘!" 하는 말씀을 던지시곤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들은 모두 한 번씩 거쳐가곤 하는 피아노를 배웠다. 초반에는 무척 재미있었지만 이사를 오면서 피아노 학원을 바꾸게 되었다. 바꾼 피아노 학원 원장선생님은 내가 피아노 기초를 처음부터 잘못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체르니 100번을 배우고 있던 나는 바이엘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아노는 이제 즐겁지 않았다. 새로운 피아노 학원 선생님은 몹시 무서웠다. 연습하다 틀리면 막대로 손가락을 때리던 선생님 밑에서 배우는 피아노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찬송가 반주를 자유자재로 하기를 바랬던 엄마를 조르고 또 졸라서 피아노를 관뒀다. 그 때가 체르니 100번, 30번을 넘어 40번을 배우고 있을 무렵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은 음악선생님이었다. 그 당시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시험시간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는 우리들 앞 교탁 위에 올라 앉아 기타를 치는, 그런 조금은 이상하고 파격적인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틈이 나면 우리에게 이런 저런 노래들을 잔뜩 가르쳐 주셨다. 여러 악보들을 주셨고, 여러가지 노래를 배웠다. 그냥 노래를 배우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모둠별로 진행하곤 했던 합창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리코더부로 CA를 선택했다. 이전에 배웠던 리코더를 제법 잘 분다는 알수없는 자부심도 있었고, 리코더부 담당 선생님이 이렇게나 이상한 우리 담임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이렇게 선택한 리코더부는 생각 외로 훨씬 재미있었다. 그 당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부르지 않던 이상한 노래도 많이 배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가끔씩 심심하면, 생각이 나면 악보를 꺼내놓고 리코더를 불곤 했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대학을 다닐 때도.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노래를 못해. 라는 생각이 생겼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고음이 올라가지 않는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이기도 하고, 중학생 시절을 워낙 불건강한 상태로 지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사실 중학생 시절 음악에 관련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고등학생이 되면서 노래가 조금은 즐거워졌다. 노래방에 가면 잠만 잤던 중학생 시절과 달리,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것의 재미를 알았다. 마음껏 소리지르고 괴상한 노래를 부르고. 한달 내내 노래방을 계속 간 적도 있었다. 노래를 못한다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못 해도 재미있게 놀 수는 있게 되었다.

대학.
오티나 엠티에서는 의례 노래를 시키기 마련. 고등학생 때 놀던 가닥(?)을 바탕으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시키면 열심히 부르지만, 노래부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좋지는 않았다.
솔멩이 배움터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시키면 부르고 놀지만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도, 내가 부르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나에게 노래를 못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은 노래를 더 꺼리게 만들었다. 특히 노래 문제로 H과 다툰 뒤에는 더 노래하는 것이 꺼려졌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과 그 분위기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JSJS의 기타소리가 가세하면서 즐거움은 더 커졌다. 분위기가 좋아지기는 했지만 난 노래를 못해. 함께 노래 하고 싶은데 함께 할 수 없어. 라는 속상한 마음은 여전했다.
3학년 때, C오빠의 퉁소소리를 들으면서 퉁소 하나를 받고 연습했지만 쉽지 않다. C오빠가 졸업하기 전까지는 같이 텔레토비에서 만나 퉁소를 불곤 했지만, 그러면서 가끔씩 연습도 했지만 바로 그해 C오빠가 졸업하면서 뜸해지고야 말았다.

졸업. 사회로 걸음을 내딛었다. 공동육아 지역모임에서 다 같이 오카리나를 구입했다. 같은 관악기인 리코더와 기본적으로 텅잉, 운지가 비슷한 지라 어렵지 않게 적응했다. 하지만 예리의 이상해. 소리가 너무 끊어져. 라는 소리에 속상한 마음이 한 가득. 꾸준히 연습을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광명 Y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광명 Y. 남들이 보면 무척 이상한 곳. 모든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노래를 2~3곡씩 부르는 곳. 교사들이 리코더나 오카리나, 기타, 하모니카 등 악기를 한 가지씩은 잘하지 못하더라도 연주하는 곳.
처음 학교에 출근한 날부터 오카리나를 잡고 교사들이 아이들 앞에서 다같이 합주를 했다. 그날 이후로 일상에서 여러가지 합주들이 이루어지곤 했다. 아이들과, 교사들과, Y 실무자 선생님들과 함께 합주하고 노래하는 건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혼자서 리코더와 오카리나를 불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함께 노래하고 함께 연주한다는 것에 대한 욕심이 점점 생겨나기 시작했다.
기타에 대한 욕심을 마음 속 깊히 갖고 있던 터에 클래식 기타 동아리가 생겼다. 허덕허덕, 어렵지만 조금씩 낑낑대며 따라가고 있었지만 학부모 강좌로 인해 연습에 3번 빠지게 되면서 포기하게 되었다. 내가 원래 배우고 싶은 건 클래식이 아니라 통기타니까. 반주를 하고 싶은 거니까. 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시켰다.
2학기에 접어들면서 Y 안에 있는 오카리나 동아리에 합류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있고, 같이 배우는 사람들이 있어서 오카리나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동아리 모임을 함께 하면서 구입했던 새 악기. 고움부에서도 쭉쭉 뻗는 시원한 소리에 내 실력도 훨씬 좋아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카리나에 대한 마음은 이렇게 점점 커져갔다.

C오빠.
지난 여름, 퉁소와 오카리나로 합주하면서 엄청나게 흥분하고 즐거웠던 우리들. 예전부터 오빠가 부는 퉁소소리를 듣곤 하고, 내가 부는 오카리나를 들으며 서로 코멘트도 해주던 우리들이었지만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꼈다. 아이들과, 친구들과 같이 여러가지 악기로 합주하자는 꿈을 보다 구체적으로 꾸기 시작했다.
퉁소를 불던 오빠는 퉁소 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합주를 위해 오카리나와 기타를 잡았다. 수다를 떨면서 상상한다. 여러가지 악기들이 어우러져서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요즘 나는 열심이다. 미카코 혼야의 연주 동영상을 보고 흥분해서 저렇게도 연주할 수 있구나! 감탄도 하고, 합주 오카리나 곡을 들으면서 채보해봐야지! 의욕을 불태우기도 한다.
작년에 C오빠와 우연히 봤던 좋아서 하는 밴드 공연. 그 밴드를 보고도 두근두근, 자극받았던 마음이 이번에 다시 살아났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 그들의 모습에 마음이 더 커진다.
저렇게 즐겁게. 나도 음악할 거야.
음악을 내 일상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 속으로. 아이들 속으로.

노래는 아직도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음악이 즐겁다.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고, 연주하는 것이 즐겁다.
어렵기만 한 노래와 더 친해지고 싶다. 나에게 맞는 노래 방법, 음을 찾아내리라. 조금더 마음도 편하게 먹어야겠지.
이제는 많이 친해진 악기들. 오카리나를 베이스로 계속 연습하면서 조금씩 범위를 늘려가볼까 한다. 가락을 연주하는 오카리나 외에 반주를 넣어줄 수 있는 악기도 시작하고 싶다. 기타가 하고 싶었지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우쿨렐레로 목표를 잡았다. 어릴 때 배웠던 피아노도 이왕이면 코드를 제대로 알아두면 더 좋겠지. 그리고 카주, 실로폰, 쉐이커 등 다양한 악기들을 감칠맛 있게 함께 넣어 연주해 보고 싶다.

뒷심 없이 이것저것 건드리고 다니는 게 내 단점이지만. 지금도 그런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욕심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볼란다.

음악을 싫어하던 나.
하지만 지금 난 음악이 좋다.
지금 나는, 음악이 좋아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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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009. 12. 28. 에 썼던 글.

지금 나는 오카리나도 열심히 연습하고 있고 우쿨렐레도 사서 연습하고 있다.
점점 더 욕심이 생기고 점점더 그림이 커진다.

C오빠와 이야기하다가 문득 하나 그림이 그려졌다.
부모가 일상적으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악기를 다루고 노래하며 음악이 삶에 녹아있겠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떠올린다.

사실 학교 차원에서 항상 이야기하는 가족문화인건데.
그게 조금 더 먼 미래에 내 가족, 내 삶에서 이렇게 그려질 수 있겠구나. 라는 걸.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그리는 그림은 일상과 음악이 하나되는 것.
음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그로 인해 즐거운 것이다.
그냥 음악과 함께 즐겁게 또 즐겁게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고 싶다.

다름과 이해 생각과 고민

사람과 사람이 만나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 도저히 그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고, 왜 저럴까, 싶은 부분들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분명 그렇다. 그런데 거기에서 제외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해할 수 없음이 아니라, 설명하면 당연히 서로 이해하고, 이해된다고 믿는 사람들. 그런 신뢰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 서로 생기는 갈등 지점들을 이야기하면서, 소통하면서 풀어 왔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만큼, 다른 지점,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생기면 더 패닉상태에 빠지는... 그런 관계가 있다.

“남자친구랑은 어때? 잘 지내?”
“너희는 어떨 때 싸워?”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말.
자주 듣는 말인데 항상 대답이 궁색하다.
“응, 잘 지내. 너무 익숙하고 잘 아니까, 싸우는 일도 거의 없지 뭐.”
그래도 그럼 가끔 싸울 때는 어떤 일로 싸우냐며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복잡한 머리로 아까보다 더 궁색하게 대답한다.
“사실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일로 화를 낼 때가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떤 게 이해할 수 없는데?”
“...이해를 못하니까 설명도 못하겠어. 그 일로 화를 낸 거에 대한 거 자체를. 진짜 이해가 안 되니까 나 다시 설명도 못 하겠어.”
하지만 다들 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끄덕끄덕.

그 사람에게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보통 그냥 “난 도무지 이해가 안 돼! 걔는 도대체 왜 그런다니!” 하며 일상적으로 투덜대는 이해 안 됨이 아니라, 뭐랄까... 보다 본질적인 느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관용어로써 이해가 아니라 정말 본질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이해되지 않음. 그렇게 맺히는 일들이 몇 번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있을 때마다 무서워지곤 한다. 정말로 무서워진다. 나 이 사람을 계속 만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올라올 정도의 무서움.
이건 말로 서로 나누고, 아무리 공유하고 소통을 잘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이해 안 됨이 아니다. 정말 다른 거다. 저 사람과 내가. 정말 다른 거다. 그것뿐이다. 그런데 너무 같은 게 많고, 공유하는 것들이 같고, 평소 사용하는 일상 언어가 같다보니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다르다. 그리고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의외로 힘들다.

다툼이 생겼다. 대부분의 다툼이 그렇듯이 별 것 아닌 걸로 시작된 다툼이다.

그녀가 그에게 장난을 걸었다. 그는 하지 마, 하고 말했다. 샐쭉, 그녀가 돌아선다. 그리고 섭섭해 한다. 그러자 그가 화를 내기 시작한다. 아직 섭섭한 마음도 있지만 일단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을 한 건 잘못한 거니까... 그녀는 사과한다. 하지만 그는 계속 화를 낸다. 계속 화를 내는 그 앞에서 그녀는 어찌해야 할 줄 모르겠다. 내가 잘못을 했으니, 사실 사과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사과했어. 그런데 왜 계속 화를 내는 거지? 나 미안하다고 사과했는데, 이렇게 계속 화를 내면 나는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거지? 잘못을 해서 화가 났으면 사과를 하면 되는 거잖아. 사과를 하는데도 계속 부정적인 감정, 화와 짜증이 쏟아지는데 지금 나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거지? 나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의식적으로 분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야하는데 막혀버린 그녀의 머리는 패닉상태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그 와중에 생각한다. 아, 나는 정말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상황을 견디지 못 하는구나.

그녀가 장난을 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장난을 칠 상황이 아니다. 하지 마 하고 말한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그녀가 무섭게 돌아서버린다. 무섭게 돌아서 버리는 그녀에게 그는 그녀가 자신을 밀쳐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처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는 화가 난다. 그가 화를 내자 그녀가 사과를 한다. 하지만 그녀가 감정 정리가 되었다고 해서 그가 바로 감정 정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단지 그녀가 그의 감정을 알아주는 것, 공감해 주는 것 뿐이다.

그녀와 그의 차이. 절대적인 차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
그녀는 행동한다. 생각한다. 저 사람이 나로 인해 감정이 상했으면 사과한다.
그는 느낀다. 감정이 올라온다. 저 사람이 내 감정을 이해해줬으면, 공감해줬으면 좋겠다.
그녀가 묻는다. 그럼 그럴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돼?
그가 대답한다. 그냥 다른 게 아니야.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나한테 관심 갖고 날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녀가 또 묻는다. ...그런데 공감해주는 건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내가 지금 ‘니가 많이 화가 났구나,’ 하면 더 화 날거 같은데. 그럼 가만히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면 돼? 그것도 무시하는 거 같아서 싫을 거 같고. 내가 어떻게 하는 게 공감하는 거야?
그가 허탈하게 웃는다. 그런 게 아니잖아. 상황에 따라 다르고, 마음에 따라 방식은 다르잖아. 내가 이야기하는 건 방식이 아니잖아.
그녀도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진짜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잘 모른다. 알았어. 공감하고, 관심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할게. 그런데 어떻게? 가 그녀의 방식이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녀와 감정을 느끼는 그의 절대적인 차이다. 진짜 공감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없는 편인 그녀는 언제나 항상 끊임없이 방식을 생각하고 묻고 행동한다. 다른 사람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그는 그녀의 그런 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


그녀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지 못한다. 내가 화를 내고 짜증을 냈을 때 그가 날 버리면 어떻게 해? 라는 기본적인 공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다. 저 사람은 내가 가버리는 것이 무섭지 않은 걸까?
그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화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좋아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다,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리낌 없이 화내고, 그걸 수용할 수 있는 관계.
그녀도 그의 생각에 동의는 한다. 머리로만. 실제 상황이 되면 힘들어진다. 저 사람이 감정을 쏟아내면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저 사람이 저렇게 쏟아내는 감정들로 인해 상처 받는다. 그녀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저 사람이 저렇게 쏟아내는 건 내가 없어도 상관없기 때문이야,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야, 라고 느끼기 까지 한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녀에게 이렇게까지 무섭게 감정을 쏟아내는 그를 이해하지 못 한다.

그녀는 풀어야 한다. 다툼이 있고 마음이 걸리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풀어야 한다. 그래서 말을 꺼낸다. 그는 그녀가 말을 꺼내면 대답한다. 한참 그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곧 그는 말한다. 머리 아파. 너무 머리가 아파서 생각을 못 하겠어. 그만 하자. 그의 그런 말에 그녀는 속상해진다. 더 이야기하기 싫다는 거구나.
그가 말을 꺼낸다. 그녀도 눈치를 보면서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가 말을 꺼내면 줄줄줄줄 그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좋은 분위기에서 서로 감정들이 풀어진다.
이건 그와 그녀의 패턴 중 하나.
그는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그만 하자는 것은 더 이야기하기 싫다는 것이 아니라 더 천천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다. 그래서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이야기는 잘 풀린다. 그녀는 생각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에게 감정을 정리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성질 급한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그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 머리 아파, 그만 하자,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정리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녀는 문제되지 않는다. 그도, 그녀도 정리가 다 된 상황이니까.
이것 역시 그와 그녀의 절대적인 차이.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내 마음 속에 응어리져서 쌓여가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이 함께.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고, 인정할 수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어제 이야기하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달라. 그래서 정말 어떤 부분들은 아무리 이해하고 이해하려고 애를 써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거야. 그리고 그건, 아마도 평생 동안 이해하지 못할 거야. 특히 나는. 내가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더더욱. 이 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해방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너무너무 좋은 기분. 다르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나쁘고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니라는 것. 다르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맞춰나가면 된다는 것.
우와, 나에겐 정말 새로운 깨달음이었는데 글로 쓰고 보니까 그냥 흔한 말들이다. 흔하게 연애상담, 부부상담할 때 이야기되곤 하는 내용들. 거 참 기분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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