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 ymca에서는 에니어그램 영성수련을 매년 1~2번 하곤 한다.
볍씨 학교 청소년 과정 친구들도 매년 가서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고, 자아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사람을 유형으로 나눈다는 것이 참 싫어서 Y에 들어오기 전에는 에니어그램이라는 것 자체에 질색을 했었다.
그리고 작년 8월, 첫 번째 에니어그램 수련을 다녀왔다.
보통 에니어그램 프로그램이랑은 좀 달랐다.
단순히 사람을 유형으로 나누면서 당신은 이 유형이니까 이런 사람, 저 유형은 저런 사람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을 같이 먹고 자고, 이야기하면서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들.
유형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
에니어그램 수련을 다녀오면서 지금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내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내 행동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다음은 두번째 에니어그램 수련을 가서 마지막 날 썼던 에니어그램 프로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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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9.화. 두 번째 에니어그램 프로필
아빠가 미웠다. 밉고 또 미워서 너무 힘들었다. 아빠에 대한 미움은 남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고 한동안 그 때문에 무척 힘들었더란다. 엄마는 내가 지켜야 하는 존재였고, 난 엄마와 친구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엄마인데... 엄마를 생각하면 왠지 모를 먹먹함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정리되지 않는 부분들이 잔뜩 떠오르곤 했다.
작년, 어릴적 엄마와 아빠에 대한 감정을 다시 떠올렸다. 아빠에 대한 마음은 내가 커서 덧입혀진 것이란 사실은 분명했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는 뭐였을까. 어릴적 나에게 엄마는... 지금은 친구같은, 좋은 엄마인데 그런데 이 먹먹함과 답답함은 도대체 뭘까.
엄마는 나를 당신을 대신할 존재로 생각하셨다.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도 못 나온 우리 엄마. 어린 나이에 돈을 벌어서 전액을 항상 집에 부쳤던 엄마. 하지만 일을 하면 손 끝이 야무지고 일처리가 명확한 엄마. 엄마는 엄마와 비슷한 나에게 기대가 컸고 엄마의 못다한 한을 나를 통해 풀길 원했다.
“엄마는 못배웠어. 너는 엄마 대신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고, 시집 잘 가고, 좋은 직장 잡아. 너는 엄마 대신... 엄마는 그게 한이야. 넌 날 너무 닮았어.”
엄마는 그래서 나에게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줬다. 서예, 피아노, 글짓기, 주산, 미술 등등 온갖 종류의 학원에 다 다녔다. 하지만 엄마는 따뜻하지는 않았다. 칭찬도, 스킨쉽도 없었다. 그런 엄마가 난 부담스러웠다.
아빠는 기억조차 희미할 정도로 좋은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날 봐주지 않는, 관심 없는 아빠.
엄마, 아빠와의 이런 관계로 난 7번에 8번 날개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이 좋다. “재미있겠다!” 싶은 것이 발견되면 당장 그걸 해봐야한다. 지금도 새로 시도하려는 게 있다. 내가 시도해봤고, 경험해 봤던 것들이 많다. 단순 특기류도 있지만 각종 교육, 모임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많이. 무엇보다 난 그렇게 할 수 있다. 다 해낼 수 있어, 라는 대책없는 무모함과 자신감이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뭔가 새로 습득하는 감과 속도가 빠르고 사람들과 모임자리에 쉽게 어울린다. 그러니 계속 한다. 그런 게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재다능, 모든 것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난 대부분의 것들을 다 잘해. 못 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라는 생각이 있었고 고등학생 시절 썼던 일기에는 팔방미인, 다재다능함에 대한 욕구, 욕심이 적혀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렇게 여러 가지 재주가 많은 내가 참 좋다.
하지만 반면에, 그런 와중에서도 마음 속 깊은 곳의 헛헛함을 느끼고 있었다. 시작하면 친구들보다 빠르게 익숙해지지만 기본적으로 정말 타고난 결정적 센스는 없구나. 난 항상 흉내만 내는, 누군가의 짝퉁이 될 수 밖에 없구나. 내 속에 진짜는 없구나. 그러니까... 깊이가 없구나.
흥미가 꾸준히 길게 이어지지 않는 탓에, 혹은 그런 벽-무언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고비에 부딪치면 바로 포기해버리는 탓이다. 무언가 하나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르는 법. 하지만 그런 고통을 회피해버린다. 피해버린다. 그래서 내 속에는 난 많은 걸 잘해!라는 오만함과 함께 나는 가볍고, 깊이가 없고,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헛헛함이 뿌리깊게 존재한다.
다이어리. 친구들과의 약속, 일정으로 가득찬 달력을 보면 뿌듯해진다. 가끔은 다시 한 번 지난 년도, 달의 다이어리 달력을 보면서 흐뭇해한다. 나 이렇게 열심히 살았지 하고.(하지만 일로 가득찬 달력은 싫다.)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하다. 재미있는 것을 찾는다. TV, 인터넷, 만화, 수다, 악기, 글쓰기, 만들기, 청소... 다 하기 싫고 귀찮으면? 잔다. 잠이라도 자야한다. 일하러 갔는데 할 일 없이 서성이고 있는 것은 힘들다. 재미없고 지루해도 힘들다. 그러면 꾸벅꾸벅 존다. 재미가 있어야 하고 계속 뭔가를 해야하니까 잘 빠져들고 탐닉한다. 마냥 프리셀을 계속하기, 인터넷 웹툰 독파하기, 만화책 쭉 이어보기, 청소를 해도 끝장을 보고, 잠을 자도 늘어지게 잔다. 12시간, 20시간도 잘 잔다. TV 드라마, 어떤 작가에게 꽂히면 그 사람 작품을 모두 찾아보고 관련 정보를 모두 찾아본다. 누구보다 중독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란 것을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식탐이 없다고 생각했다. 먹을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먹을 걸 밝히는 사람은 천박하다고 생각했다. 먹는 걸 줄이고 친구들과 음식을 먹을 때 끝까지 먹고 싶어도 참았다. 걸신들린 것처럼 보일까 봐. 그래도 미각에 대한 자신은 있었다. 맛있다, 맛없다를 판단하는 기준은 누구보다 까다롭다고 생각해왔다. 이제는 안다. 난 맛있는 음식이 좋고, 맛있는 걸 먹을 때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이 기분을 부정하고 모르는 척 하지 않는다. 대식과 집착, 그러니까 탐닉은 조심해야겠지만.
물욕도 마찬가지다. 난 물욕이 없는데요. 하고 단호하게 지난 에니어그램 수련 그룹 토론에서 이야기했다. 물건을 마음껏 가져본 적이 없었다. 수련이 끝나고 깨달았다. 지하상가를 지날 때 왔다갔다 굴러가는 내 눈동자와 마음. 치솟는 욕심. 가져본 경험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욕심이 난다. 옷, 악세사리, 악기, 온갖 재료와 공구들, 책 등등... 옷이나 악세사리는 스스로 제동을 거나 책, 공구와 재료들은 마구 충동구매를 잘한다.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사야한다. 나를 키우고 성장시킨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 나를 더 세울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내가 지향하는 가치에 적합하다면 아끼지 않는다.
내 상태가 좋을 때 나는,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행복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어 행복하고, 술 한 잔, 맥주 한 캔에 행복하고, 저기 지나가는 다람쥐 한 마리에 행복하고, 따뜻한 방바닥에 행복하다. 사실, 내가 이런 하나하나에 행복함을 스스로 절실히 느끼고 표현하게 된 것도 작년 에니어그램을 접하게 되면서 그리 되었다. 아, 나도 이렇게 작은 거에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었구나.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지만 나도 이런 감정을 갖고 있었구나.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 뼛속 깊이 외로움과 상실감, 박탈감을 느낀다. 치를 떨 정도로 힘들고 우울하고, 지치고, 울고 또 운다. 이런 감정이 느껴질 때는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못한다. 외롭고 또 외롭다. 아프다.
나의 이 불안, 욕구, 해소되지 않는 뿌리 깊은 외로움과 박탈감을 없애기 위해 나는 공격한다. 나보다 약한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이해되지 않는 사람. 저 사람이 어떻게 이야기하면 가장 아프고 힘들지 안다. 그 곳을 철저히 공격한다. 그러니까 나 공격하지 마. 나 건드리지 마. 그리고 그런 자신을 다시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나는 언제 인간이 될까.
하지만 나는 이제 내 욕구, 불안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모욕하는 것을 포기한다. 점점 나는 좋아지고 있다. 기복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 내가 내 불안, 욕구, 아픔 때문에 남을 공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나는 그를 포기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장애물에 부딪친다고 해도 곧 원상회복될 수 있다. 나는 그런 힘과 에너지를 충분히 갖고 있고 그를 행동으로 옮기고 마음 깊이 담을 수 있다.
나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맑은 정신으로 지낼 수 있다.
두 번째 에니어그램 수련.
첫번째와 같은 내용, 같은 이야기지만 또 다른 이야기들이 들리고 마음 속에 와닿는다. 이번 에니어그램에서 가장 크게 놀라고 깨달은 사실은
내 보복성. 내 화.
자존심이 상하면 무섭게 보복한다. 무섭게 화를 낸다는 사실.
말도 안돼, 하고 생각했지만 소나무가 떠올랐다.
맞다. 나 소나무에게 무섭게 보복했지.
정신없이 프로필을 써내렸다. 더 쓰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역시 용두사미. 후반부에 가니까 지쳐버렸다. 끝 마무리가 미약하다. 첫번째 프로필을 쓸 때는 쓰면서도 엉엉 울면서 썼는데 두번째는 너무 편하게 썼다. 쭉쭉. 그리고 편하게 발표할 수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발표하면서 생각과 달리 격하게 울음이 터졌다. 다 발표를 하고 나니 온화한 미소로 선생님이 끄덕이며 미소짓고 계셨다.